[해가패시브 칼럼 11편] 열이란 무엇인가 — 현열·잠열, 전도·대류·복사로 읽는 집
한겨울 볕이 잘 드는 창가에 가만히 앉아있으면 보일러를 틀지 않았는데도 피부 끝으로 따스함이 스며듭니다. 반대로 여름철 차가운 얼음물이 든 잔 겉면에 물방울이 맺힐 때면, 손끝에 서늘한 기운이 전해지곤 하지요. 우리는 매일 삶 속에서 열을 느끼고 마주하지만, 과연 이 '열'이라는 존재는 집 안에서 어떻게 움직이고 작용하는 것일까요?
건축에서 쾌적한 실내 환경을 만드는 일은 결국 열의 정체를 정확히 이해하고, 이 열이 집 안팎을 넘나드는 통로를 정밀하게 제어하는 과학적 과정입니다. 물리적인 열의 성질을 알면 우리가 사는 공간이 왜 겨울에 춥고 여름에 무더운지 그 근본적인 이유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온도계에 찍히는 열과 눈에 보이지 않는 숨은 열우리가 흔히 말하는 온도는 물체를 구성하는 분자들이 얼마나 활발하게 움직이는지를 나타내는 지표입니다. 분자들의 운동이 격렬할수록 물체는 뜨거워지고, 온도계의 수치도 올라갑니다. 이렇게 우리가 피부로 직접 느끼고 온도계로 측정할 수 있는 열을 '현열'이라고 부릅니다. 같은 온도라 할지라도 물체의 질량이 크면 가지고 있는 현열의 총량도 커집니다. 작은 컵에 담긴 끓는 물보다 넓은 욕조에 채워진 따뜻한 물이 훨씬 많은 열에너지를 품고 있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반면, 온도계의 바늘을 움직이지 않으면서 상태를 바꾸는 데 쓰이는 숨은 열도 있습니다. 이를 '잠열'이라고 합니다. 얼음이 녹아 물이 되거나, 물이 증발하여 수증기로 변할 때 물체는 엄청난 양의 에너지 상태 변화를 겪습니다. 여름철 땀이 증발할 때 피부가 시원해지는 것은, 땀이 수증기로 변하면서 우리 몸의 현열을 잠열의 형태로 빼앗아가기 때문입니다. 집을 설계할 때 실내 습도를 조절하고 환기 시스템을 고민하는 이유 역시 이 눈에 보이지 않는 잠열이 실내 쾌적성과 에너지를 좌우하는 핵심 변수이기 때문입니다.
공기를 타고 흐르고 물체를 통해 건너가는 열의 경로열은 항상 에너지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이동합니다. 이 이동 방식은 크게 전도, 대류, 복사의 세 가지로 나뉩니다. 첫째로 '전도'는 물체가 직접 닿아있을 때 분자와 분자가 충돌하며 열을 전달하는 방식입니다. 밀도가 높은 금속은 전도가 빠르게 일어나지만, 공기는 분자 간의 거리가 멀어 전도가 매우 느리게 일어납니다. 겨울철 두꺼운 패딩 점퍼가 따뜻한 이유도 옷감 사이에 갇힌 공기층이 전도에 의한 열 손실을 막아주는 훌륭한 단열재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둘째인 '대류'는 공기나 물 같은 액체와 기체가 직접 움직이며 열을 나르는 현상입니다. 따뜻해진 공기는 가벼워져 위로 올라가고, 차가운 공기는 무거워져 아래로 내려앉습니다. 겨울철 방 안에서 천장 쪽은 따뜻한데 발끝은 서늘하게 느껴지는 공기 성층화 현상이 바로 자연 대류 때문에 발생합니다.
공기를 통해 열을 나르는 대류 방식 외에도, 물이라는 매개체를 이용해 열을 이동시키는 방법도 있습니다. 수증기나 물은 공기에 비해 단위 부피당 훨씬 더 많은 열을 저장하고 이동시킬 수 있습니다. 같은 양의 열을 저장하거나 전달하기 위해 공기는 물보다 무려 3,000배나 더 큰 부피가 필요합니다. 이를 이용한 난방방식이 우리네의 온돌입니다.
유리를 통과하는 햇살이 집을 데우는 원리마지막으로 '복사'는 공기나 물질 같은 매개체 없이 열이 전자기파의 형태로 직접 전달되는 방식입니다. 추운 날 야외에서 불을 쬐거나, 한겨울에도 태양 빛을 받으면 즉시 따뜻함을 느끼는 것이 복사열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세상의 모든 물체는 열을 품고 있기때문에 그에 맞는 파장의 복사에너지를 방출합니다. 태양처럼 수천 도에 달하는 엄청난 고온의 물체는 파장이 짧은 '단파 복사'를 내뿜지만, 우리 주변의 가구나 벽체, 사람의 몸처럼 온도가 낮은 물체는 파장이 긴 '장파 복사'를 방출합니다. 이 파장의 차이가 바로 패시브 건축의 가장 중요한 원리 중 하나인 '온실효과'를 만들어냅니다.
유리는 신기하게도 투명한 성질을 가지고 있지만, 모든 파장의 빛을 똑같이 통과시키지는 않습니다. 태양이 내뿜는 단파 형태의 일사 에너지는 유리를 아주 쉽게 통과하여 실내로 들어옵니다. 들어온 빛은 바닥과 벽, 가구에 흡수되어 이들을 따뜻하게 데우고, 데워진 실내 집기들은 다시 장파 형태의 열을 복사열의 형태로 방출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유리는 이 장파 형태의 열복사를 통과시키지 못하고 다시 실내로 튕겨내거나 흡수합니다. 이렇게 갇혀진 열이 실내 온도를 자연스럽게 상승시키게 됩니다.
직관을 넘어 정밀한 계산으로 완성하는 집이처럼 전도, 대류, 복사, 그리고 현열과 잠열의 역학 관계는 집이라는 공간 내부에서 한시도 쉬지 않고 복잡하게 얽혀 작용합니다. 유리를 통해 들어오는 태양 복사열을 겨울에는 최대한 받아들이고, 여름에는 차양을 통해 효과적으로 차단하는 것. 벽체를 통한 전도열을 막기 위해 단열재의 연속성을 확보하는 것. 침누기로 인한 열 빼앗김을 막기 위해 기밀성을 완성하는 것. 이 모든 요소가 완벽한 균형을 이룰 때 비로소 사계절 내내 온전한 쾌적함이 완성됩니다.
어느 한 계절의 경험이나 짐작만으로 집의 열 환경을 설계할 수는 없습니다. 해가패시브건축사사무소는 집을 지을 때 감에 의존하는 대신, Energy#과 같은 정밀한 에너지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활용합니다. 건물이 들어설 대지의 기후 데이터, 창문의 향, 재료의 열용량까지 물리적 수치로 변환하여 정밀하게 계산합니다.
열의 이동 경로를 완벽히 예측하고, 오차 없는 시공으로 그 계산을 현실로 구현해 내는 것. 이것이 바로 해가패시브건축사사무소가 고집하는 데이터로 증명하는 건축가의 책임입니다.
이 글이 만들어진 과정이 연재는 Norbert Lechner의 『Heating, Cooling, Lighting』을 교재로 삼습니다. 책의 챕터 순서에 따라 다룰 주제를 나누고, 각 주제를 패시브하우스의 설계·시공과 연결해 글의 얼개를 구성합니다. 그 얼개를 바탕으로 한 초벌 원고 작성에는 생성형 AI의 도움을 받으며, 최종 원고는 필자가 내용을 검토하고 현장 경험을 더해 다듬은 것입니다.
조민구 · 해가패시브건축사사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