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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패시브 칼럼 12편] MRT부터 열용량·시간지연까지 — 건물이 열을 저장하고 흘리는 원리

2026.08.21 · 조민구 건축사 · 해가패시브건축사사무소

[해가패시브 칼럼 12편] MRT부터 열용량·시간지연까지 — 건물이 열을 저장하고 흘리는 원리

[해가패시브 칼럼 12편] MRT부터 열용량·시간지연까지 — 건물이 열을 저장하고 흘리는 원리

한겨울 실내 온도를 22도로 맞춰두었는데도 어떤 날은 오싹한 한기가 느껴지고, 어떤 날은 포근하게 느껴진 적이 있으신가요? 온도계에 표시된 숫자는 분명 동일한데 사람의 몸이 받아들이는 온기나 한기가 매번 달라지는 까닭은,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 속 열의 물리적 거동이 훨씬 입체적이기 때문입니다. 집을 이루는 재료가 열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저장하며, 흘려보내는지 이해하는 것은 쾌적한 주거 환경을 만드는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중요한 출발점입니다.

1. 온도계의 숫자는 거주자의 쾌적함을 다 설명하지 못합니다

공기의 온도 외에도 우리 몸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바로 주변 벽체나 창문과 주고받는 복사열입니다. 건축 환경공학에서는 이를 평균 복사 온도, 즉 MRT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주변에 노출된 면의 면적이 넓거나 거리가 가까울수록, 그리고 그 표면의 온도가 극단적일수록 우리가 느끼는 체감 온도는 크게 출렁입니다. 겨울철 넓은 창가 옆에 섰을 때 찬 바람이 불지 않는데도 서늘하게 느끼는 것은, 차가운 유리 표면으로 우리 몸의 열이 직접 빼앗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여름철 옥상 표면의 색상이 어두울수록 햇빛을 많이 흡수해 표면 온도가 급격히 오르고, 백색 표면이나 빛을 반사하는 재료를 쓰면 어느정도 시원함을 오래 유지할 수 있습니다. 각 재료의 흡수율과 방사율에 따라 표면의 평형 온도가 완전히 달라지는 것입니다. 제가 직접 테스트한 바에 의하면 거의 20~40도 차이가 납니다.

2. 열의 흐름과 열을 담는 그릇의 크기

열은 항상 높은 온도에서 낮은 온도로 흐릅니다. 마치 수위가 높은 저수지에서 수위가 낮은 쪽으로 물이 자연스럽게 떨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이때 물의 양이 얼마나 많으냐보다는 두 지점 사이의 높이 차이, 즉 온도 차이가 열의 이동 속도와 방향을 결정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흘러드는 열을 잠시 머물게 만드는 재료의 능력을 열용량이라고 부릅니다. 열용량은 열을 담아두는 수조의 크기와 같습니다. 공기는 아주 작은 수조를 가져 열이 조금만 들어와도 온도가 금방 오르는 반면, 물이나 콘크리트 같은 중량재는 커다란 수조를 가져 엄청난 양의 열을 담아둘 수 있습니다. 낮 동안 뜨거운 열을 두꺼운 콘크리트 구조체가 흡수하여 실내 온도 상승을 막아주는 열흡수원 역할을 하고, 밤이 되면 서늘해진 외기와 밤하늘로 열을 내보내 다음 날을 준비하는 원리가 바로 여기서 나옵니다.

3. 시간에 차속을 두는 단열과 시간 지연 효과

벽체의 성능을 평가할 때 단열 성능을 나타내는 열저항 값만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균일한 상태가 아니라 하루 동안 온도가 쉼 없이 변하는 동적 환경에서는 질량을 가진 재료의 시간 지연 효과가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똑같은 단열 성능을 지닌 가벼운 목재 벽과 두꺼운 콘크리트 벽이 있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외부에서 강한 열이 가해졌을 때 가벼운 목재는 열용량이 작아 내부로 열이 전달되는 시간이 매우 짧습니다. 반면 두꺼운 콘크리트는 들어온 열의 상당 부분을 자기 몸집을 데우는 데 쓰느라 실내 쪽으로 열을 넘겨주기까지 긴 시간이 걸립니다. 이를 시간 지연 현상이라고 부릅니다. 사막이나 일교차가 큰 지역에서 두꺼운 흙집이나 콘크리트 집이 한낮의 더위를 차단하고 밤에 그 열을 배출하며 서늘함을 유지하는 이유가 바로 이 원리에 있습니다. 하지만 덥고 습한 여름철을 가진 우리나라는 이런 방식으로 외부의 열을 차단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습한 환경은 낮밤의 온도차가 그리 크지 않기때문이죠. 중부유럽의 경우 한낮의 온도는 우리와 비슷하지만 밤에 그들은 20도 이하로 뚝 떨어집니다. 그래서 밤에 창을 열어 구체를 식혀 낮동안에 그 식힌 열로 냉방에 도움을 줄 수 있지요. 그렇지만 우리나라는 열대야가 많아 밤에도 덥기 일쑤이고 온도가 내려가봐야 23도 24도 정도에다가 상대습도까지 높아서 쾌적해지기가 아주 어려운 기후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럽의 패시브하우스와 우리나라의 패시브하우스는 원리는 같지만 그 작동방식에서는 차이가 납니다. 이를 잘 분석하고 해석하여 우리나라에 맞는 패시브하우스를 항상 고민하고 구현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4. 에너지를 다루는 건축의 지혜와 재료에 담긴 역사

건물에 필요한 에너지를 만들어내고 사용할 때도 물리 법칙의 제약을 받습니다. 고품질의 에너지인 전기를 단순한 난방용 열로 바꾸는 것은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화력발전소에서 전기를 만들어 집까지 송전하는 과정에서 이미 원천 에너지의 70%정도가 버려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건물에서 전기를 생산하면서 이때 발생하는 폐열을 난방과 온수로 재활용하는 열병합 발전이나 수소 연료전지 기술이 각광받고 있습니다. 나아가 건물을 새로 지을 때 들어가는 자재의 생산과 운송, 시공 과정에서 소모되는 내재 에너지를 고려하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알루미늄이나 목재 등 재료마다 제조 과정에 쓰이는 에너지가 천차만별이기에, 제조할때 에너지가 적게 드는 자재를 쓰거나, 기존 건물을 되살려 재사용하는 고쳐짓기가 때로는 가장 친환경적인 건축이 되기도 합니다.

실내에서 거주자가 느끼는 포근함은 단순한 온도계 숫자 하나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주변 표면의 평균 복사 온도부터 구조체가 지닌 열용량, 하루 동안 흐르는 열의 시간 지연, 그리고 건물의 생애주기에 걸친 에너지 흐름까지 복합적으로 작용할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 해가패시브건축사사무소는 이러한 건축 환경공학적 원리를 감이나 경험에 의존해 어림잡지 않습니다. 정밀한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벽체의 구성, 열용량과 시간 지연 효과, 사계절 복사열의 변화를 정밀하게 계산하고 숫자로 도출해 냅니다. 오차 없는 시공과 섬세한 데이터 검증을 통해 가장 이상적인 실내 환경을 구축하는 것, 이것이 바로 해가패시브가 고집하는 데이터로 증명하는 건축가의 책임입니다.

이 글이 만들어진 과정

이 연재는 Norbert Lechner의 『Heating, Cooling, Lighting』을 교재로 삼습니다. 책의 챕터 순서에 따라 다룰 주제를 나누고, 각 주제를 패시브하우스의 설계·시공과 연결해 글의 얼개를 구성합니다. 그 얼개를 바탕으로 한 초벌 원고 작성에는 생성형 AI의 도움을 받으며, 최종 원고는 필자가 내용을 검토하고 현장 경험을 더해 다듬은 것입니다.

조민구 · 해가패시브건축사사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