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패시브 칼럼 5편] 건축은 기후를 담는 그릇 — 토속·전통 건축에서 배우는 설계 지혜
지중해의 강렬한 햇살 아래 깔끔하게 하얀 칠을 한 모로코의 두꺼운 흙집과, 습기 찬 바람이 불어오는 동남아시아의 높다란 원두막 형태 나무 집은 왜 이토록 다르게 생겼을까요? 장식이나 양식의 차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그 속에는 인류가 오랫동안 생존하며 체득해 온 기후 응답의 지혜가 숨어 있습니다. 기계 설비도, 전기도 없던 시절의 건축은 그 자체로 거대한 온열 조절 장치이자 빛을 담는 그릇이었습니다. 현대 건축이 에어컨과 히터라는 기계 장치에 지나치게 의지하는 동안 잊고 있었던 본질, 즉 건축의 형태가 어떻게 열과 냉기, 그리고 빛을 제어해야 하는지 고대의 지혜에서 그 답을 찾아봅니다.
1. 바람과 두께, 기후가 결정한 전통 건축의 형태세계 각지의 토속 건축을 살펴보면 해당 지역의 기후가 건물 형태를 결정지었음을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중동이나 북아프리카처럼 낮에는 매우 덥고 밤에는 추운 건조 기후 지역에서는 두꺼운 흙벽과 작은 창문, 그리고 평평한 지붕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두꺼운 벽은 마치 성능 좋은 보온병처럼 낮 동안의 뜨거운 열기를 온종일 천천히 흡수하여 실내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줍니다. 그리고 서늘해진 밤이 되면 그동안 머금었던 열을 천천히 내뿜으며 실내 온도를 유지합니다. 햇빛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창은 최소한으로 줄이고 실내 벽면도 밝은색으로 마감하여 적은 양의 빛으로도 실내를 은은하게 밝힙니다.
반면 습도가 높은 열대 기후 지역의 건축은 전혀 다른 전략을 취합니다. 습한 지역에서는 열을 저장하는 두꺼운 벽이 오히려 밤시간의 쾌적함을 방해하는 독이 됩니다. 따라서 바람이 잘 통하는 가벼운 목재를 사용하고, 바닥을 지면에서 띄운 고상식 구조를 취합니다. 지붕은 경사를 가파르게 만들어 빗물을 빠르게 흘려보내고, 커다란 차양을 드리워 햇빛과 빗물을 동시에 막아섭니다. 이는 마치 바람이 잘 통하는 얇은 삼베옷을 입고 양산을 쓴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실내의 뜨거운 공기가 위로 빠져나가도록 천장을 높게 만들고 지붕에 환기창을 두는 것 역시 순수한 자연의 힘으로 쾌적함을 얻기 위함입니다.
겨울이 길고 혹독한 추운 지역에서는 몸을 동그랗게 웅크리는 동물처럼 건물의 외피 면적을 최소화하는 상자형의 공공 형태가 발전했습니다. 열 손실이 가장 큰 부위인 창문의 크기를 줄이고, 돌보다는 열전도율이 낮은 나무를 주재료로 사용해 온기를 지켰습니다. 이처럼 시대를 막론하고 뛰어난 건축물들은 항상 자연의 결을 거스르지 않고 그 기후를 기꺼이 담아내는 형태를 띠고 있었습니다.
2. 거장들의 명작 속에 숨겨진 패시브 에너지 지혜역사 속 위대한 건축가들 역시 기후를 다루는 일을 건축 디자인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여겼습니다. 고대 그리스 건축의 상징인 신전의 열주 공간이나 회랑은 단지 미학적인 장식이 아니었습니다. 깊게 내밀어진 지붕과 기둥 열은 여름의 높게 뜬 태양 빛을 차단하여 시원한 그늘을 만들고, 비바람으로부터 벽체와 출입구를 보호하는 훌륭한 환경 차양 장치였습니다.
거대한 실내 공간을 자랑하는 로마의 바실리카와 고딕 양식의 성당들 역시 빛과 열을 제어하기 위해 구조의 한계를 극복해 낸 결과물입니다. 고딕 성당의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는 높은 천장 부근에 뚫린 창을 통해 자연광을 실내 깊숙이 들여보내기 위한 구조적 집약체였습니다. 실내 전체를 따스하고 거룩한 빛으로 채우면서도 계절에 따른 열의 흐름을 계산했던 것입니다.
처마의 깊은 그늘 아래로 부드러운 햇살이 들어오는 고전적인 회랑
근대 건축의 거장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건물의 깊은 처마를 이용해 계절별 일사량을 조절했고, 중정을 통해 깊은 실내까지 자연채광과 통풍이 가능하도록 설계했습니다. 르 코르뷔지에 역시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자신의 철학 속에 열적 쾌적성과 자연광이라는 환경적 기능을 깊이 포함시켰습니다. 그는 차양 판인 브리즈 솔레이와 건물 전체에 우산처럼 그늘을 만들어주는 패러솔 지붕을 발명하며 기계 설비 없이도 건물이 스스로 쾌적함을 유지할 수 있음을 증명해 냈습니다.
3. 80%의 에너지를 결정짓는 건축가의 펜 끝건물에서 소비되는 에너지를 줄이고 쾌적한 실내 환경을 만드는 일은 흔히 기계 설비 엔지니어의 영역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실상 에너지를 절약하는 가장 강력한 열쇠는 초기 설계 단계에서 건축가가 쥐고 있습니다. 친환경 건축 환경을 조성하는 과정은 크게 세 가지 단계로 나뉩니다.
첫 번째 단계는 건물의 배치, 형태, 창의 크기와 향, 단열과 기밀 같은 가장 기본적인 건축적 요소들을 정립하는 것입니다. 건물이 위치한 땅의 기후를 이해하고 방위를 바르게 잡는 것만으로도 건물 전체 에너지 소요량의 절반 이상을 줄일 수 있습니다. 마치 겨울철에 얇은 옷을 여러 겹 겹쳐 입고 겉에 바람막이 점퍼를 잘 차려입는 것과 같습니다.
두 번째 단계는 태양열을 이용한 패시브 난방, 자연 통풍을 활용한 냉방, 그리고 천창과 차양을 통한 자연채광 시스템 등 자연의 에너지를 능동적으로 유입하고 차단하는 기술입니다. 이 첫 번째와 두 번째 단계는 오롯이 건축가의 설계 전략에 속하며, 이 두 가지만 완벽히 수행해도 건물이 사용하는 전체 에너지의 최대 80%까지 절감할 수 있습니다.
깊은 창호를 통해 실내 깊숙이 자연광이 들어오는 현대 패시브 주택의 거실
마지막 세 번째 단계가 되어서야 비로소 보일러나 에어컨, 조명 기구 같은 기계 및 전기 설비가 등장합니다. 앞선 두 단계에서 이미 80%의 열과 빛을 건축 스스로 조절해 두었기 때문에, 세 번째 단계에서 필요한 기계 장치의 용량은 아주 소형으로 줄어들게 됩니다. 초기 설계에서 기후를 고려하지 않은 채 유리 상자 같은 건물을 지어두고 고용량의 에어컨과 난방기를 24시간 가동하는 현대 건축의 오류를, 과거의 토속 건축과 거장들의 지혜가 경고하고 있는 셈입니다.
4. 감이 아닌 정밀한 데이터로 완성하는 현대의 토속 건축과거의 토속 건축이 오랜 세월 시착오를 겪으며 경험적으로 기후에 적응해 왔다면, 오늘날의 우리는 첨단 과학과 데이터를 통해 건물이 지어지기 전 이미 그 성능을 완벽히 예측할 수 있습니다. 옛사람들이 흙과 나무로 그 지역의 기후를 담아냈듯, 현대의 패시브 건축은 고성능 단열재와 고기밀 창호, 그리고 정교한 열교 차단 기술을 통해 현대적인 기후 응답형 건축을 만들어냅니다.
남쪽으로 난 창을 통해 겨울철 따스한 햇살을 깊숙이 들이고, 여름철에는 계산된 처마로 뜨거운 태양을 차단하며, 열반환환기장치를 통해 숨 쉬듯 쾌적한 공기를 유지하는 집. 이러한 건축은 단순히 화려한 외관을 다듬는 것만으로는 결코 완성될 수 없습니다. 건물이 들어설 부지의 일조량, 바람의 흐름, 그리고 벽체를 통과하는 열의 움직임을 사전에 세밀하게 계산해야만 가능합니다.
해가패시브건축사사무소가 디자인의 시작 단계부터 에너지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인 Energy#을 통해 수치를 정밀하게 검증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시공 과정에서의 작은 오차 하나까지 놓치지 않고 계측하는 까다로움은 기후와 환경에 반응하는 가장 확실한 집을 만들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입니다. 옛 건축가들의 지혜에 현대 건축 물리학의 정교함을 더하는 것, 정밀한 데이터로 증명하는 건축가의 책임이야말로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가장 쾌적하고 아름다운 공간을 완성하는 단 하나의 길입니다.
이 글이 만들어진 과정이 연재는 Norbert Lechner의 『Heating, Cooling, Lighting』을 교재로 삼습니다. 책의 챕터 순서에 따라 다룰 주제를 나누고, 각 주제를 패시브하우스의 설계·시공과 연결해 글의 얼개를 구성합니다. 그 얼개를 바탕으로 한 초벌 원고 작성에는 생성형 AI의 도움을 받으며, 최종 원고는 필자가 내용을 검토하고 현장 경험을 더해 다듬은 것입니다.
조민구 · 해가패시브건축사사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