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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패시브 칼럼 6편] 죽은 건물과 살아있는 건물 — 회복력·바이오필릭, 에너지와 기후

2026.08.07 · 조민구 건축사 · 해가패시브건축사사무소

[해가패시브 칼럼 6편] 죽은 건물과 살아있는 건물 — 회복력·바이오필릭, 에너지와 기후

한겨울 갑작스러운 정전으로 보일러가 멈춘 순간을 상상해 본 적이 있으신가요? 밖은 서슬 퍼런 강추위가 불어닥치는데, 전기와 가스가 끊긴 실내는 불과 몇 시간 만에 얼음굴처럼 서늘해집니다. 반대로 한여름 폭염 속에 에어컨이 꺼지면 실내는 순식간에 찜통으로 변해버리지요. 기후는 끊임없이 변하고 때로는 거친 재난으로 찾아오는데, 왜 우리가 사는 건물은 기계 설비가 전력을 뿜어낼 때만 겨우 온도를 유지하는 무기력한 상자여야 할까요? 거친 바깥 날씨로부터 사람을 보호해야 할 건물이, 정작 에어컨과 보일러라는 호흡기를 떼는 순간 생명력을 잃고 죽은 공간이 되어버리는 셈입니다.

1. 변하는 날씨에 왜 건물은 가만히 있어야 할까요?

비행기는 시속 수백 킬로미터로 하늘을 날 때 이륙과 착륙, 순항 단계에 맞춰 날개의 모양을 자유자재로 바꿉니다. 거센 바람과 눈보라 속에서도 작동하는 이 정밀한 가변 시스템 덕분에 안전한 비행이 가능한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매일 거주하는 건물은 계절이 바뀌고 태양의 위치가 분 단위로 달라져도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하는 고정된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최근 건축 환경 분야에서 강조되는 회복력은 정전이나 에너지 공급 중단이라는 비상 상황에서도 건물이 스스로 쾌적한 온도를 유지하며 사람이 살아갈 수 있게 돕는 능력입니다. 마치 한겨울 따뜻한 음료를 오랫동안 보존하는 보온병처럼, 외부 기후에 무조건적으로 휘둘리지 않고 내부의 에너지를 뺏기지 않는 구조가 필요합니다. 더 나아가 여름에는 햇빛을 가려주고 겨울에는 온기를 깊숙이 들여보내는 입체적인 외피 디자인을 갖춘다면, 외부 에너지가 끊겨도 집은 최소한의 쾌적함을 스스로 유지하는 살아있는 공간이 됩니다.

2. 자연을 품은 흰색 건물이 주는 놀라운 반전

한여름 볕이 내리쬐는 날, 검은색 옷을 입었을 때와 흰색 옷을 입었을 때 체감되는 뜨거움은 완전히 다릅니다. 건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붕과 외벽을 밝은 흰색으로 마감하는 것만으로도 건물은 태양열의 상당 부분을 우주로 다시 반사해 냅니다. 반면 최근 도시마다 화려하게 들어서는 전면 유리 건물은 빛을 반사하는 거대한 거울이 되어 이웃 건물에 눈부심과 원치 않는 열 폭탄을 안겨주며, 도심의 온도를 올리는 주요 원인이 됩니다.

자연과의 연결을 뜻하는 바이오필릭 디자인 역시 단순한 미적 장식이 아닙니다. 실내에서 외부의 녹음과 자연광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창의 배치, 나무와 돌 같은 자연 재료의 질감은 사람의 스트레스를 줄이고 건강을 증진시킵니다. 거창한 유리 마천루를 세우는 대신, 적절한 크기의 창과 그늘을 만드는 차양, 그리고 밝은 색채가 어우러질 때 건물은 비로소 주변 생태계 및 사람과 호흡하는 건강한 생명력을 갖게 됩니다.

따스한 자연광이 깊게 들어오고 창밖으로 푸른 나무가 내다보이는 실내 거실 공간 사진 따스한 자연광이 깊게 들어오고 창밖으로 푸른 나무가 내다보이는 실내 거실 공간 3. 50년을 견디는 집, 기후와 에너지를 어떻게 다뤄야 할까요?

우리가 타는 자동차는 보통 10년이 지나면 교체되지만, 한 번 지어진 건물은 최소 50년 이상 그 자리를 지킵니다. 오늘 우리가 결정하는 건축적 선택이 반세기 동안 소모될 막대한 에너지와 기후 변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특히 주택처럼 외벽과 지붕이 외부 공기와 닿는 면적이 넓은 건물은 기후 조건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지구상에서 쓰이는 전력의 상당 부분이 건물의 냉난방과 조명에 사용됩니다. 하지만 계절별 태양의 고도에 맞춘 정밀한 차양 설계, 건물의 컴팩트한 형태, 그리고 기후 특성을 고려한 일사 조절만으로도 기계 설비에 의존하는 에너지 양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건물이 정밀한 기후 대응 구조를 갖추면, 대형 냉난방 장치를 설치하느라 드는 초기 비용은 물론 수십 년간 지불해야 할 운용 비용까지 동시에 절감됩니다.

눈 덮인 겨울 풍경 속에서도 따뜻하고 온화한 분위기를 풍기는 단독주택 건물 사진 눈 덮인 겨울 풍경 속에서도 따뜻하고 온화한 분위기를 풍기는 단독주택 건물

집을 지을 때 감에 의존한 막연한 추측은 훗날 냉난방비 폭탄이나 실내 쾌적성 저하라는 결과로 돌아옵니다. 해가패시브건축사사무소는 수치화된 기후 데이터와 정밀한 Energy# 시뮬레이션을 바탕으로 1도, 1와트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건축을 지향합니다. 기후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외부 에너지가 끊긴 순간에도 스스로 온기를 지켜내는 집, 정밀한 계산과 오차 없는 시공으로 완성하는 살아있는 건물이야말로 데이터로 증명하는 건축가의 책임입니다.

이 글이 만들어진 과정

이 연재는 Norbert Lechner의 『Heating, Cooling, Lighting』을 교재로 삼습니다. 책의 챕터 순서에 따라 다룰 주제를 나누고, 각 주제를 패시브하우스의 설계·시공과 연결해 글의 얼개를 구성합니다. 그 얼개를 바탕으로 한 초벌 원고 작성에는 생성형 AI의 도움을 받으며, 최종 원고는 필자가 내용을 검토하고 현장 경험을 더해 다듬은 것입니다.

조민구 · 해가패시브건축사사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