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1차] 탄소중립 시대, 건축사의 역할과 설계 전략 (1)
[기획연재1차]
탄소중립 시대, 건축사의 역할과 설계 전략 (1)
부제: 기후 위기 시대, 건축의 본질을 다시 묻다
인류는 현재 기후 변화라는 전례 없는 실존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산업혁명
이후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1.5℃ 이내로 제한하려는 국제사회의 필사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미 그 임계점을 위협받고 있다. 전 세계 에너지 소비의
약 36%,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약 39%를 차지하는 건축
및 건설 산업은 기후 위기의 가장 큰 원인 제공자인 동시에, 역설적으로 가장 강력하고 실질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분야이기도 하다. 따라서 기후 위기로부터 지구를 구하고 지속 가능한 삶의
터전을 만드는 도덕적 리더로서, 우리 건축사들의 어깨 위에 놓인 책임과 의무는 그 어느 때보다 무겁고
중대하다.
지난 수십 년간 건축계의 친환경 담론은 주로 '운영 에너지(Operational Energy)'의 효율화에 집중되어 왔다. 단열
성능을 강화하고(Passive), 고효율 설비와 신재생 에너지를 도입하여(Active) 건물이 사용하는 에너지를 줄이는 것이 곧 '친환경 건축'의 동의어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건물의 단열과 설비 성능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제로 에너지 빌딩(ZEB)이 현실화되고 있는 지금, 우리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건물을 '운영'하는 단계가 아니라, 건물을 '짓는' 행위 그 자체—자재의 채취, 가공, 운송, 시공, 폐기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내재 탄소(Embodied Carbon)'의 비중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본 연재에서는 이러한 패러다임의 대전환기에서 우리 건축사들이 가져야 할 새로운 문제의식과 구체적인 설계 방법론을 2회에 걸쳐 심도 있게 다루고자 한다. 1차에서는 탄소중립의 새로운
패러다임과 자재 혁명을, 2차에서는 리노베이션과 구체적인 설계 전략을 논한다.
1. 탄소중립의 새로운 패러다임: 운영 탄소에서 전 생애주기 탄소로
1-1. 1.5℃ 목표와 탄소의 시간 가치 (Time Value of Carbon)
기후 위기 대응에서 가장 간과하기 쉬우면서도 핵심적인 요소는 '총량'이 아닌 '타이밍'이다. 2050년 탄소중립(Net-Zero) 달성이라는 장기적 목표도 중요하지만, 지구 온난화의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를 막기 위해서는
당장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2010년 대비 45% 이상 감축해야 한다는 것이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의 엄중한 경고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탄소의 시간 가치(Time Value of Carbon)'라는 개념이
대두된다.
현재 시점에서 배출되는 1톤의 탄소는 20년
후에 배출되는 1톤의 탄소보다 기후 시스템에 훨씬 더 치명적이다. 대기
중에 축적된 탄소는 즉각적으로 온실효과를 가속화하기 때문이다. 내재 탄소는 건물이 준공되어 사용되기도
전, 즉 '지금 당장(Upfront)'
대기 중으로 배출되는 선행 탄소다. 연간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의 약 11%가 건축 자재와 건설 과정에서 발생하며, 이는 신축 건물이 생애주기
동안 배출할 탄소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우리의 에너지망은 점차 청정해지고 있다. 태양광, 풍력 등 재생 에너지의 비율이 높아짐에 따라 건물의 운영 탄소는 시간이 지날수록 자연스럽게 감소할 것이다. 하지만 건설 시점에 배출된 내재 탄소는 되돌릴 수 없다. 즉, 2030년까지의 단기적이고 시급한 기후 대응에 있어서는, 30년에
걸쳐 서서히 에너지를 절약하는 고효율 건물보다, 당장의 자재 생산과 시공 과정에서 탄소 배출을 억제한
건축물이 기후적으로 훨씬 더 가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건축사가 구조재와 내외장재를 선택하는 그
순간, 해당 건물의 초기 기후 영향력은 결정된다.
1-2. 전 생애주기 탄소(Whole Life Carbon)의 이해
건축물의 환경적 영향을 온전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운영 단계 중심 사고에서 벗어나 '전 생애주기 탄소(Whole Life Carbon, WLC)'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WLC는 크게 두 가지
축으로 구성된다.
●
운영 탄소
(Operational Carbon): 건물의 사용 단계(B6~B7)에서 발생하는 냉난방, 조명, 환기, 급탕 등의 에너지 소비에 의한 탄소 배출이다.
●
내재 탄소
(Embodied Carbon): 건물의 원자재 채취(A1), 운송(A2), 제조(A3),
시공(A4~A5) 단계의 '선행 내재 탄소(Upfront Carbon)'와 사용 중 유지보수 및 교체(B1~B5), 철거
및 폐기(C1~C4) 단계의 탄소 배출을 총칭한다.
과거 단열 기준이 낮았던 시절에는 운영 탄소가
건물 전체 배출량의 70~80%를 차지했기에 패시브적 접근이 절대적이었다. 그러나 건축물 에너지효율등급 인증, 제로 에너지 건축물 의무화 등으로
운영 탄소는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캐나다, 스웨덴 등 선진국의
경우 신축 건물의 생애주기 탄소 중 내재 탄소 비중이 이미 50%에 육박하거나 이를 상회하고 있다. 한국 역시 2050 탄소중립 로드맵에 따라 전력 생산의 탈탄소화가
진행될수록, 건축사가 통제하는 '물성(Materiality)'의 영역인 내재 탄소 관리가 핵심 과제로 부상할 것이다.
1-3. 건축사의 역할 변화와 위기의식
이러한 패러다임의 변화는 건축사에게 위기이자 동시에 기회다. 그동안 친환경
건축은 종종 건축사의 손을 떠나 친환경 컨설턴트나 기계/전기 엔지니어의 영역으로 치부되곤 했다. 건축사가 형태와 공간을 계획하면, 엔지니어가 고효율 장비와 신재생
에너지를 '덧붙여(Add-on)' 인증 점수를 맞추는 방식이었다. 이는 건축을 거대한 기계 장치에 의존하게 만들었고, 결과적으로 건축사의
역할을 축소시켰다.
그러나 내재 탄소의 감축은 오로지 건축사의 결정에 달려 있다. 건물의 형태와
향을 어떻게 잡을지, 기둥 간격(Span)을 어떻게 조절하여
구조 물량을 최적화할지, 철근콘크리트 대신 목재를 사용할지, 기존
건물을 부수지 않고 고쳐 쓸지는 엔지니어가 아닌, 디자인 초기 단계의 건축사가 결정해야 하는 고유 권한이다. 탄소중립 시대는 건축사가 단순히 '형태의 창조자'가 아니라, 지구 자원의 흐름을 통제하고 조율하는 '탄소 코디네이터'로서의 주도권을 되찾을 수 있는 시기다. "에너지 절약형 기계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건축 계획
자체가 에너지를 절약하고 탄소를 격리해야 한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1-4. 내재탄소 : 이제는 집중해야 할 시기
지금까지 우리는 운영 탄소를 줄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다. 고단열, 고기밀, 고성능 창호, 열교
차단, 열회수 환기장치 등을 활용하는 패시브(Passive) 기법은
이제 선택이 아닌 **건축의 기본(Default)**이 되었다. 패시브 디자인은 건물이 갖춰야 할 기초 체력이자 상식이며, 더 이상
이것만으로 '친환경'을 논하기엔 부족한 시대가 되었다.
이제 우리는 시선을 돌려 **내재 탄소(Embodied
Carbon)**에 집중해야 한다. 건물의 뼈대와 살을 이루는 재료가 어디서 왔으며, 어떤 환경적 비용을 치르고 만들어졌는지 따져물어야 한다. 내재 탄소
저감을 위해 건축사가 선택할 수 있는 전략은 명확하다. 수많은 방법론이 존재하지만, 가장 큰 파급력을 가지는 두 가지 핵심 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신축에 있어서의 '목질화'**이다. 탄소를
다량 배출하는 콘크리트와 철을 줄이고, 탄소를 저장하는 목구조와 목재 마감재를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것이다.
둘째, **기존 건축물의 '리노베이션'**이다. 짓지
않는 것이 가장 친환경적이라는 명제 하에, 기존 구조를 재활용하여 탄소 발생을 원천 차단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거대한 축, **'목질화'**와 **'리노베이션'**은 탄소중립 시대를 항해하는 건축사들에게 주어진
가장 강력한 무기이자 나침반이다.
2. 자재 혁명: 목조 건축(Mass
Timber)과 바이오필릭 디자인
2-1. 탄소를 저장하는 건축: 목재의 재발견
리노베이션이 불가능하여 부득이하게 신축을 해야 한다면, 건축사가 선택할 수
있는 최고의, 그리고 유일한 탄소 네거티브 자재는 바로 '나무'이다. 현대 건축의 주류인 콘크리트와 철은 제조 과정에서 화석 연료를
태우며 막대한 탄소를 배출(Carbon Emitting)하는 대표적인 고탄소 자재다. 반면, 나무는 성장 과정에서 광합성을 통해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이를 바이오매스 형태로 저장(Carbon Storing)한다.
목재 1㎥는 약 1톤의 이산화탄소를
저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건축물의 구조재나 마감재로 사용하면, 건물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그 탄소를 대기로부터 격리하는 효과를 얻는다. 이를 '탄소 격리 효과'라고 한다. 더
중요한 것은 '대체 효과'이다. 탄소 집약적인 콘크리트와 철골을 목재로 대체함으로써, 그만큼의 온실가스
배출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다. 여러 LCA 연구에 따르면, 목조 건축은 일반 철근콘크리트 건물 대비 내재 탄소를 20~40% 이상
감축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현존하는 건축 자재 중 가장 확실하고 검증된 탄소 저감 솔루션이다.
2-2. 한국형 중고층 목조 건축의 가능성과 법규 변화
과거 한국 건축 시장에서 목조 건축은 화재 취약성과 구조적 한계라는 편견에 갇혀 저층 단독주택이나 소규모 상업시설에만
국한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 공학 목재(Engineered Wood)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과 이에 발맞춘 법규 개정으로 바야흐로 '매스 팀버(Mass Timber)'의 시대가 열렸다.
1) 높이 제한
폐지와 내화 구조 인정
과거 건축법에 존재했던 목조 건축의 높이 제한과 규모 제한이 폐지되었다. 또한 국립산림과학원 등의 연구를 통해 목구조 부재가 2시간 이상의
내화 성능을 확보할 수 있음이 입증되었다. 화재 시 목재 표면이 탄화(Charring)되면서
생성된 탄화층이 산소 공급을 차단하여 내부 구조의 구조적 내력을 일정 시간 동안 유지해준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법적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이는 5층 이상의
중고층 목조 건물도 기술적, 법적으로 충분히 가능함을 시사한다.
2) CLT(Cross Laminated
Timber)의 도입과 프리패브 공법 나무 판재를 직교로 겹쳐 붙인 CLT는
'목재로 만든 콘크리트'라 불릴 만큼 강력한 강도와 치수 안정성을 자랑한다. CLT는 전단력에 대응하는 콘크리트 슬래브나 벽체를 완벽하게 대체할 수 있다.
무엇보다 공장에서 정밀하게 사전 제작(Pre-fabrication)되어 현장에서는 조립만
하는 건식 공법(Off-Site Construction)이 가능하므로,
공사 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고 현장 폐기물과 소음, 분진을 최소화할 수 있다.
3) 국내 사례와
바이오필릭 디자인
최근 국내에서도 '산림복지종합교육센터'와 같은 기념비적인 중고층 목조 건축물들이 등장하고 있다. 국내 최초의 7층 목구조인 이 프로젝트는 구조의 약 78%를 목재로 사용하고 코어
등 필수적인 부분에만 철근콘크리트를 적용한 하이브리드 구조를 채택했다. 총 340톤의 탄소를 저장할 수 있으며, 국산 목재를 적극 활용하여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했다.
이러한 목조 건축은 단순히 탄소만 줄이는 것이 아니다. 목재가 주는 따뜻한 질감, 향기,
시각적 편안함은 인간의 본성인 자연 회귀 본능을 충족시키는 '바이오필릭(Biophilic) 디자인'의 정점이다. 이는 재실자의 스트레스를 낮추고 업무 생산성을 높이는 등 거주 성능 측면에서도 탁월한 가치를 제공한다.
[기획연재 2차] 탄소중립 시대, 건축사의 역할과 설계 전략 (2)
부제: 리노베이션과 데이터 기반의 구체적 실천론
지난 호에서는 탄소중립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운영 탄소'에서 '전 생애주기 탄소(특히
내재 탄소)'로 전환되고 있음을 확인하고, 그 첫 번째 해법으로 '목조 건축(Mass Timber)'을 살펴보았다. 이번 호에서는 내재 탄소 저감의 또 다른 핵심 축인 '리노베이션'과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설계 방법론, 그리고 데이터 기반의
의사결정 프로세스에 대해 심층적으로 다루고자 한다.
3. 가장 효과적인 탄소 저감 전략 : 리노베이션
3-1. "가장 친환경적인 건물은 이미 지어진 건물이다"
미국 건축가협회(AIA) 전 회장 칼 엘레판테(Carl Elefante)의 말처럼, "가장 친환경적인 건물은
이미 지어진 건물"이다. 건축사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하고 즉각적인 탄소 저감 전략은 역설적이게도 '신축을 하지 않는 것'이다. 기존 건물을 전면 철거하고 새로 짓는 대신, 리노베이션(Renovation)하거나 용도를 변경하여 재사용(Adaptive Reuse)하는 것은 신축 대비 내재 탄소를 50%에서
최대 75%까지 절감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방법이다.
건물을 철거하는 행위는 기존 구조체(기초,
기둥, 보, 슬래브)에 저장되어 있던 막대한 양의 내재 탄소를 일순간에 폐기물로 만들어버리는 것과 같다. 또한 신축 과정에서 다시 엄청난 양의 시멘트와 철강을 소비하며 '탄소
빚'을 안고 시작하게 된다. 우리는 '탄소 빚(Carbon Debt)'이라는 이 개념에 주목해야
한다. 신축 건물이 아무리 높은 에너지 효율을 자랑하더라도, 건물을
짓는 과정에서 발생시킨 막대한 내재 탄소를 운영 단계의 절감량으로 상쇄(Payback)하는 데는 짧게는
수십 년에서 길게는 80년까지 소요된다. 지금 당장의 탄소
배출을 줄여야 하는 기후 위기의골든타임에, 80년 뒤에나 갚을 수 있는 탄소 빚을 내어 건물을 짓는
것이 과연 윤리적인가? 이제 건축의 성적표는 운영 효율이 아니라, 탄소
회수 기간을 얼마나 단축하느냐로 평가받아야 한다.
물론 현실적인 장벽은 존재한다. 현행법상 리노베이션은 신축에 비해 구조 안전진단이나
주차장 대수 확보, 최신 피난 규정 준수 등에서 까다로운 잣대를 적용받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탄소중립이 국가적 과제라면, 기존 건축물의 존치를 선택하는
건축주와 건축사에게 용적률 완화나 세제 혜택과 같은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정책적 전환이 병행되어야 한다.
건축사의 창의적 노력이 법규의 문턱에 걸려 신축이라는 손쉬운 탄소 배출로 이어지지 않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절실하다하겠다.
3-2. 리노베이션의 탄소 저감 메커니즘과 데이터
일반적인 현대 건축물에서 '구조체(Structure)'는
건물 전체 내재 탄소의 약 60% 이상을 차지한다. 리모델링이나
대수선을 통해 기존 건물의 뼈대를 재사용한다는 것은, 곧 전체 탄소 배출량의 과반을 차지하는 구조 부문의
배출을 '0'으로 만드는 것과 같다.
국토교통부가 추진 중인 공공건축물 그린 리모델링 사업은 이러한 맥락에서 매우 중요하다.
노후화된 건물의 단열 성능을 보강하고 고효율 창호로 교체하여 운영 에너지를 20~40% 이상
개선하는 동시에, 철거 후 신축이라는 고탄소 배출 경로를 차단하는 이중의 효과(Double Dividend)를 낸다. 이는 도시의 역사성과 장소성을
보존한다는 인문학적 가치 외에도, 가장 경제적이고 과학적인 탄소 중립 수단임을 데이터가 증명하고 있다.
3-3. 리노베이션 설계를 위한 건축적 접근
리노베이션은 백지에 그림을 그리는 신축보다 더 높은 수준의 건축적 해법과 창의성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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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의 미학: 기존 구조의 그리드, 층고의 한계, 설비
공간의 부족 등을 제약이 아닌 디자인의 모티프로 활용해야 한다. 노출 콘크리트와 새로운 마감재의 조화, 옛것과 새것의 대비(Contrast)를 통해 시간의 층위를 드러내는 '탄소의 미학(Carbon Aesthetic)'을 구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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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직 증축과 하이브리드: 도심지의 밀도를 높여야 하는 부동산적 요구와
탄소 저감의 요구가 충돌할 때, 기존 철근콘크리트(RC) 구조
위에 가벼운 목구조(Mass Timber)로 수직 증축을 하는 하이브리드 방식이 훌륭한 대안이 된다. 목재의 경량성은 하부 구조의 보강을 최소화하면서도 건물의 가치를 높이는 스마트한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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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능 개선의 디테일:기존 건물의 성능 개선은 단순한 외단열 보강을
넘어 '연속성'의 확보에 성패가 달려 있다. 특히 리노베이션 과정에서 놓치기 쉬운 슬래브단부와 개구부 주위의 열교(Thermal
Bridge)를 물리적으로 차단하는 디테일이 핵심이다. 또한, 고성능 창호 교체와 더불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할 것이 바로 '기밀
시공'이다. 아무리 두꺼운 단열재를 쓰더라도 공기의 흐름을
막지 못하면 열 손실과 내부 결로를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건축사는 도면 단계에서부터 단열과 기밀의
연속적인 선이 끊기지 않도록 정밀하게 제어해야 한다. 하지만 잊어서는 안되는 것이 있다. 바로 환기이다. 고성능의 기밀 시공(Airtightness)은 외부 침기를 차단하여 에너지 손실을 막아주지만, 동시에
건물 내부를 밀폐시켜 '자연 환기'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든다. 환기가 정체된 공간은 이산화탄소 농도 상승과 오염물질 축적으로 인해 재실자의 건강을 위협한다.이때 열회수 환기장치는 기밀된 건물에서 '숨구멍' 역할을 한다. 단순히 공기를 교체하는 것을 넘어, 나가는 공기의 열에너지를 들어오는 신선한 공기에 전달함으로써 환기로 인한 열 손실을 70~90%까지 회수한다.기밀 시공으로 침기를 막고, 열회수 환기장치로 필요한 만큼의 환기를 제어하는 시스템적 접근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리노베이션 건축물의
탄소중립 성능이 완성될 것이다.
4. 탄소중립을 위한 구체적 설계 방법론
앞서 언급한 큰 전략들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전술, 즉 설계 방법론은
다음과 같다.
4-1. 건축의 목질화 (Wood in Architecture)
구조재뿐만 아니라 내외장재에서의 목질화도 중요하다. 인테리어 마감재로 목재를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실내 습도 조절 효과와 탄소 저장 효과를 누릴 수 있다. 건축사는 설계 단계에서부터
규격화된 목재 사용을 고려하여 자재 손실(Loss)을 줄여야 한다.
4-2. 리노베이션 (Renovation First)
프로젝트 기획 단계에서 건축주는 으레 신축을 원하기 마련이다. 이때 건축사가
전문가로서 리노베이션의 경제성, 공기 단축 효과, 그리고
환경적 가치를 분석하여 건축주를 설득하고 제안하는 '기획력'이
필요하다.
4-3. 패시브 디자인(Passive Design)의 정교화
탄소중립의 기본은 여전히 에너지 수요 자체를 줄이는 패시브 디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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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치와 매스(Massing): 향을 고려한 배치와 건물의 체적 대 표면적 비(S/V ratio)를 최소화하는
단순한 매스 계획은 에너지 손실을 줄이는 가장 경제적인 방법이다. 요철이 많은 복잡한 형태는 열교를
유발하고 공사비를 증가시키며 탄소 배출을 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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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능 외피(Envelope): 법적 기준을 상회하는 열관류율(U-value) 확보는 물론, 단열재가 끊기지 않도록 하는 디테일 설계(Thermal Bridge
Free)에 집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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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양 및 일사 조절: 여름철 냉방 부하를 줄이기 위한 외부 차양(External Shading) 설치는 필수적이다. 유리 커튼월의
과도한 사용을 지양하고, 계절에 따른 태양 고도를 고려한 입면 디자인이 요구된다.
4-4. 장수명 구조 (Long Life Design)
건물을 한 번 지으면 100년 이상 쓸 수 있도록 튼튼하고 가변성 있게 짓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친환경이다. 라멘(Rahmen) 구조를
적용하여 내부 벽체를 쉽게 변경할 수 있게 하고, 층고를 넉넉히 확보하여 미래의 용도 변경에 대응해야
한다.
4-5. 재료의 최적화와 저탄소 콘크리트
목조로 전환하기 어려운 기초나 지하 구조물에는 콘크리트가 필수적이다.
●
물량 산출 최적화: 구조 엔지니어와의 긴밀한 협업을 통해 과설계를
지양하고 기둥과 보의 크기를 최적화해야 한다. "Less is More"는 이제 "Less Material is Less Carbon"이다.
●
저탄소 콘크리트 지정: 시멘트 사용량을 줄이고 플라이애시(Fly ash)나 고로슬래그(Blast furnace slag)와
같은 산업 부산물 혼화재 비율을 높인 저탄소 콘크리트 사용을 시방서에 명기해야 한다.
●
EPD 요구: 자재 선정 시 환경성적표지(EPD) 인증 제품을 우선 고려해야 한다.
4-6. 해체를 고려한 설계 (Design for Disassembly, DfD)
건물의 끝을 미리 고민해야 한다. 현재의 습식 공법(타설, 접착)은 재활용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부재들을 볼트와 너트로 조립하는 건식 접합 방식을 적용하고, 수명이 다른 구성 요소(구조체, 설비, 마감)를 분리하여(Shearing
Layers) 리모델링 시 부분 교체가 용이하도록 설계해야 한다. 이것이 순환 경제(Circular Economy)를 건축에 구현하는 핵심이다.
5. 건축사의 새로운 역할: 데이터 기반의 의사결정과 윤리
5-1. 직관을 넘어 데이터로: LCA의 통합
건축사의 직관적인 디자인이나 "친환경적인 느낌"만으로는 부족하다. 실제 탄소 저감으로 이어지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정량적인 데이터가 필수적이다. 이제 '전 과정 평가(LCA, Life Cycle Assessment)'는 연구실을 벗어나 설계 사무소의 책상 위로 올라와야 한다.
설계가 완료된 후 인증을 받기 위해 요식행위로 수행하는 사후 LCA는 설계
변경을 이끌어내지 못하므로 의미가 없다. 계획설계(SD) 단계에서부터 "이 매스를 선택하면 탄소가 얼마나 나오지?", "외장재를
석재에서 벽돌로, 혹은 목재로 바꾸면 탄소가 얼마나 줄어들지?"를
실시간으로 비교 검토해야 한다.
앞으로 국내 자재의 내재탄소량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이를 기반으로 BIM(건설정보모델링)이나 적산 프로그램과 연동하여 물량 산출과 동시에 탄소 내역서를 뽑아낼 수 있는 도구들을 개발해야 할 것이다.
6. 결론 및 제언: 탄소중립, 건축의
새로운 윤리이자 미학
기후 위기 시대, 건축은 더 이상 단순한 조형 예술이나 자본 증식을 위한
부동산 개발 행위에 머물 수 없다. 그것은 지구의 유한한 자원을 재구성하여 인간의 생존 환경을 만드는
엄중한 윤리적 행위이다.
서울시의 녹색건축물 설계기준 강화,우리 정부의 2050 탄소중립 로드맵 등 정책적 환경은 이미 급변하고 있다. 그러나
법규가 시키는 최소한의 기준을 맞추는 소극적 태도로는 위기를 막을 수 없다. 건축사들은 리노베이션을
우선적으로 검토하고(Reuse), 신축 시에는 목재와 같은 저탄소 자재를 적극 도입하며(Reduce), 설계의 모든 과정에서 탄소 데이터를 검토하는(Review) 능동적
주체로 거듭나야 한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건축은 화려한 외관 뒤에 엄청난 탄소 발자국을 숨긴 '기후
악당' 같은 건물이 아니다. 오래된 것의 시간적 가치를 존중하고, 재료의 물성을 정직하게 드러내며, 자연의 순환 원리에 겸허히 따르는
건축이다. 이것이 탄소중립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건축의
미학'이며, 우리 건축사가 이 시대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가장 숭고한 방식일 것이다.
[부록] 건축사를 위한 탄소중립 실천 체크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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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단계: 신축이 꼭 필요한가? 기존 건물의 리노베이션 가능성을 검토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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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 단계: 건물의 매스(Mass)는 에너지 효율적인가?
향(Orientation)과 차양을 고려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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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 계획:목구조(Mass Timber) 적용이 가능한가? 하이브리드 구조로 콘크리트 양을 줄일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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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재 선정: EPD(환경성적표지)가 있는 저탄소 자재를 선택했는가? 과도한 마감재를 사용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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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업 단계: 기계/전기 엔지니어와 초기부터 에너지 부하 저감을 논의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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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 검토: 주요 자재 변경에 따른 탄소 배출량 변화를 대략적으로라도 계산해보았는가?